서대문 형무소에 다녀와서(진하늘RT)

  오늘은 한국사 검정 능력 시험 평가를 보고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견학을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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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강점기 때 독립 운동가들을 죽이고, 고문 시킨 그 곳을 그대로 복원 시킨 곳이라 가기 전에 선생님들께서는 영적으로 매우 좋지 않을 거라고 하셨다. 처음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현장이라 아무 생각, 느낌이 없었다. 하지만 계속 둘러다 보니 수감자들이 있던 방엔 왠지 모를 살기가 느껴지고, 무서운 느낌도 들었었다.

 

  이 분들은 나라를 위해서 한 몸을 바쳐가며 온갖 고문을 당하면서도 우리나라의 독립을 외치신 분들이었다. 형무소를 둘러보다 문득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었다. “이 분들은 나라를 위해 한 몸을 바치는데 나는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나도 복음만을 위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 체험 학습을 가기 전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서대문 형무소에 관한 영상을 보여 주셨다. 그 때의 영상 장면들을 생각하며 한국사 공부를 하고 가니 더 이해가 잘 되었다. 옥사의 구조는 밖에선 볼 수 있지만 안에선 못 보게 하는 구조였다. 원래 수감 되어야 하는 사람의 몇 배의 수를 감옥에 넣어서 감금했다. 또 감독관이 중간에 서면 세 통로가 전부 보이는 공간이어서 더욱 무서웠을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공간은 사형소와 고문장이었다. 사형소 앞에는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그곳에서 사람들이 죽기 싫어 매달렸다고 하는데 그 나무를 통곡의 미루나무라고 부른다고 하셨다. 사형장 내부는 생각보다 좁아서 사람이 죽는 과정을 보는 사람도 얼마나 고통에 시달렸을지 끔찍했다. 고문장은 상상 이상으로 끔찍했다. 손톱 찌르기, 뜨거운 물 붓기, 고춧가루 물 붓기, 못 박힌 상자 안에 넣어 흔들기, 좁은 공간에 가두기 등... 이 외에도 사람에게 도저히 할 수 없을 정도의 고문을 하는데 독립 운동을 하다가 옥고를 치르던 분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립 운동가들은 갖가지 고문을 당하면서도 그 형무소 안에서도 지속적인 투쟁을 하셨다. 일본 차관의 말엔 “그 날이 되면 사람들이 전부 호랑이 같이 변한다.”고 할 정도로 독립 운동가들의 독립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서대문 형무소 뿐만 아니라 전국엔 대여섯 개 정도의 감옥소가 있었다고 한다. 그 장소 하나 하나가 잊혀지지 않는다. 진짜 하나님께서 확실하게 역사하시는 선교지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분들 때문에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건데 나는 후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지에 대한 도전과 기도가 나왔다. 지금 살아 계시는 독립 운동가들의 증언을 통해서 당시 일제의 만행이 얼마나 잔인했었는지 느껴졌다. 서대문 형무소를 돌아보며 더욱 더 기도가 되어졌다. 그 감옥소 자리를 복원해서 만든 것도 대단하지만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탄압 속에 독립 운동을 지속한 독립 운동가들을 존경하며 깊이 머리가 숙여졌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서대문형무소에 다시 와보고 싶을 만큼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