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선교의 발자취 양화진을 다녀와서…

2018년 2월 2일 금요일, 우리는 잡월드에 다녀온 후 양화진을 다녀왔다.

양화진은 1890년 정부에 의하여 외국인 묘지로 지정되었고 양화진에 처음으로 묻힌 분은 헤론 선교사님이다. 양화진은 한국국방과 외교의 중요한 요충지로써 깊은 수심은 배를 선박 하기에 환상적인 조건 이였다. 그렇기 때문에 양화진을 중심으로 활발한 무역 활동이 일어났지만 좋은 지리 조건 때문에 타국이 침범하는 국방의 최약지이기도 하였다.

흥성대원군 집권시기에는 외국과 국교를 맺지 않는 척화의 정신으로 많은 천주교 신자 및 기독교 신자들을 박해했다. 당시 기독교 전파는 불법이기 때문에 선교사님들은 교육과 의료 분야를 중심으로 복음을 전파하셨다. 대표적으로 알렌 선교사님은 조선정부에서 일하는 민영인이 자객에 의하여 심각한 부상을 입었을 때 당시 조선의 전통의술로도 고쳐지지 않는 병과 상처를 치료하여 고종이 감사의 뜻으로 광혜원을 하사했다. 또한 아펜젤러 선교사님은 교육분야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치셨다. 배제학당을 설립하여 근대식 교육에 힘쓰셨다. 이처럼 선교사님들이 우리나라에 끼친 영향은 결코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굉장하다.

흥성대원군의 천주교 탄압 시기 때는 만주의 존 로스 선교사가 한글로 번역된 성경의 필요성을 깨닫고 한국 밖에서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국에 처음 선교사님께서 들어오셨을 때 그의 손에는 한 권의 한글성경이 들려있을 수 있었다. 이로 인해 한글이 완전히 서민들의 문자들로 자리잡음으로서 우리가 한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선교사님들은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아 몸이 병들어 소천하시는 경우가 허다했다. 로제타 훌 선교사님, 헤론 선교사님, 유일한 일본인 선교사 소다 가이치 선교사님, 언더우드 선교사님 등 수도 없이 많다. 복음을 전파하는데 나의 생명은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바울의 고백이 우리나라를 복음화하신 여러 선교사님들의 마음 속에 담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양화진 옆의 여러 선교사님들이 묘와 기념비, 그리고 그분들의 자녀들의 묘를 보았다. 그것들을 보면서 나는 마음이 측은해졌고 또 선교사님들을 보내셔서 복음의 씨앗이 제 1,2,3 RUTC운동으로 자라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에 너무나 감사했다. 그러다가 그 묘비들 중에 프리메이슨의 묘비를 발견하게 되어 놀랐다. 과거에 외국인 묘지를 외국인을 묻기 위해 프리메이슨에게 잠깐 빌려준 적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3~4개 정도의 프리메이슨 묘비가 있다고 가이드 분께서 그러셨다. 이미 수 백 년 전에 우리나라에 파고들어 온 마귀가 얼마나 간악한 술수를 부리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우리가 지금 복음 위에 서서 복음을 위해 학업하고 미래를 준비하게 하신 선교사님들과 또 그분들을 보내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이예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