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호, 206호, 207호의 성경 퀴즈 대회

205호, 206호, 207호의 성경 퀴즈 대회가 있었습니다. 주제는 마태복음 14장부터 28장까지 읽어온 뒤 남녀 다 같이 섞어서 성경 퀴즈 대회를 하였습니다.

 아무리 급해도 사진은 찍어줘야쥐~

 아무리 급해도 사진은 찍어줘야쥐~

 (속닥속닥) 뭔가 이거 같지 않아?

 (속닥속닥) 뭔가 이거 같지 않아?

 이 팀은 뭔가 자신감이 넘쳐 보이네? 열심히 읽었나봐?

 이 팀은 뭔가 자신감이 넘쳐 보이네? 열심히 읽었나봐?

 결과에 상관없이 모두가 최선을 다한 성경 퀴즈 대회였기에 나름 의미가 많이 있었고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결과에 상관없이 모두가 최선을 다한 성경 퀴즈 대회였기에 나름 의미가 많이 있었고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NOVEMBER PICTURE DAY Vs. MARCH

  MARCH  PICTURE DAY

 - 몸과 키가 크고 마음이 깊어지고 신앙이 성장한 우리들의 지난 날들...

RGS(2017.03.10.) - 봄이 왔지만 날씨가 쌀쌀했던 기억이 납니다.

RGS(2017.03.10.) - 봄이 왔지만 날씨가 쌀쌀했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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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 형무소에 다녀와서(진하늘RT)

  오늘은 한국사 검정 능력 시험 평가를 보고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견학을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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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강점기 때 독립 운동가들을 죽이고, 고문 시킨 그 곳을 그대로 복원 시킨 곳이라 가기 전에 선생님들께서는 영적으로 매우 좋지 않을 거라고 하셨다. 처음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현장이라 아무 생각, 느낌이 없었다. 하지만 계속 둘러다 보니 수감자들이 있던 방엔 왠지 모를 살기가 느껴지고, 무서운 느낌도 들었었다.

 

  이 분들은 나라를 위해서 한 몸을 바쳐가며 온갖 고문을 당하면서도 우리나라의 독립을 외치신 분들이었다. 형무소를 둘러보다 문득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었다. “이 분들은 나라를 위해 한 몸을 바치는데 나는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나도 복음만을 위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 체험 학습을 가기 전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서대문 형무소에 관한 영상을 보여 주셨다. 그 때의 영상 장면들을 생각하며 한국사 공부를 하고 가니 더 이해가 잘 되었다. 옥사의 구조는 밖에선 볼 수 있지만 안에선 못 보게 하는 구조였다. 원래 수감 되어야 하는 사람의 몇 배의 수를 감옥에 넣어서 감금했다. 또 감독관이 중간에 서면 세 통로가 전부 보이는 공간이어서 더욱 무서웠을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공간은 사형소와 고문장이었다. 사형소 앞에는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그곳에서 사람들이 죽기 싫어 매달렸다고 하는데 그 나무를 통곡의 미루나무라고 부른다고 하셨다. 사형장 내부는 생각보다 좁아서 사람이 죽는 과정을 보는 사람도 얼마나 고통에 시달렸을지 끔찍했다. 고문장은 상상 이상으로 끔찍했다. 손톱 찌르기, 뜨거운 물 붓기, 고춧가루 물 붓기, 못 박힌 상자 안에 넣어 흔들기, 좁은 공간에 가두기 등... 이 외에도 사람에게 도저히 할 수 없을 정도의 고문을 하는데 독립 운동을 하다가 옥고를 치르던 분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립 운동가들은 갖가지 고문을 당하면서도 그 형무소 안에서도 지속적인 투쟁을 하셨다. 일본 차관의 말엔 “그 날이 되면 사람들이 전부 호랑이 같이 변한다.”고 할 정도로 독립 운동가들의 독립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서대문 형무소 뿐만 아니라 전국엔 대여섯 개 정도의 감옥소가 있었다고 한다. 그 장소 하나 하나가 잊혀지지 않는다. 진짜 하나님께서 확실하게 역사하시는 선교지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분들 때문에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건데 나는 후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지에 대한 도전과 기도가 나왔다. 지금 살아 계시는 독립 운동가들의 증언을 통해서 당시 일제의 만행이 얼마나 잔인했었는지 느껴졌다. 서대문 형무소를 돌아보며 더욱 더 기도가 되어졌다. 그 감옥소 자리를 복원해서 만든 것도 대단하지만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탄압 속에 독립 운동을 지속한 독립 운동가들을 존경하며 깊이 머리가 숙여졌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서대문형무소에 다시 와보고 싶을 만큼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